본문 바로가기

명징직조

엔트로피의 새로운 해석 - 추적 가능한 정보가 미시적 자유도로 분산되는 과정

1. 엔트로피를 ‘무질서’라고 부를 때 생기는 문제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의 정도’라고 설명된다.

정돈된 방보다 어질러진 방의 엔트로피가 높고, 멀쩡한 컵보다 깨진 컵의 엔트로피가 높으며, 한쪽에 모여 있던 기체가 방 전체로 퍼지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유는 엔트로피 변화의 방향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이 질서이고 무엇이 무질서인지는 관찰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 조각 역시 원자 수준에서는 일정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각 입자는 여전히 물리 법칙을 따른다.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해서 세계가 법칙 없는 혼란 상태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엔트로피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엔트로피 증가는 정보가 단순히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추적 가능했던 거시적 정보가 수많은 미시적 자유도와 상관관계 속으로 분산되는 과정

으로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양이라기보다, 정보가 더 이상 단순한 거시적 변수로 회수되지 않는 정도를 나타낸다.


2. 거시상태와 미시상태

어떤 물리적 계를 완전히 설명하려면 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기체라면 모든 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아야 하고, 고체라면 원자의 위치와 진동 상태를 알아야 한다. 양자계라면 전체 파동함수나 밀도행렬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부적인 상태를 미시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모든 미시상태를 측정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과 같은 소수의 거시적 변수만 사용한다.

  • 온도
  • 압력
  • 부피
  • 밀도
  • 평균 속도
  • 물체의 형태
  • 물질의 공간적 분포

이러한 변수로 표현되는 상태가 거시상태다.

하나의 거시상태에는 매우 많은 미시상태가 대응한다.

예를 들어 “상자 속 기체의 온도가 300K다”라는 정보만으로는 각각의 분자가 어디에 있고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다. 서로 전혀 다른 수많은 분자 운동 상태가 모두 같은 300K라는 온도로 표현될 수 있다.

이를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수많은 미시상태 → 하나의 거시상태

볼츠만 엔트로피는 이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S = k_B ln Omega

여기서

  • S는 엔트로피
  • k_B는 볼츠만 상수
  • Omega는 하나의 거시상태와 양립 가능한 미시상태의 수

를 의미한다.

엔트로피가 크다는 것은 단순히 계가 혼란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거시적 정보만으로 구별할 수 없는 미시적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3. 추적 가능한 정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추적 가능한 정보는 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정보에 가깝다.

  • 소수의 변수로 표현할 수 있다.
  • 반복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 시간에 따른 변화를 기록할 수 있다.
  • 미래 상태를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 미시적 세부를 모두 몰라도 안정적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T_hot > T_cold

이 온도 차이는 직접 측정할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 열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이 차이를 이용해 열기관을 작동시키거나 일을 얻을 수도 있다.

즉, 온도 차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활용 가능한 거시적 정보다.

두 물체를 접촉시키면 열은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이동한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두 물체는 같은 온도에 도달한다.

T_hot → T_eq

T_cold → T_eq

처음에는 “어느 쪽이 뜨거운가”라는 정보가 명확했다. 하지만 평형에 도달한 뒤에는 그 차이를 더 이상 관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에너지는 여전히 분자들의 운동, 충돌, 진동 속에 존재한다.

사라진 것은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에너지가 어느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거시적 구분

이다.


4. 정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산된다

이상적인 고립계에서 미시적 운동은 가역적일 수 있다.

고전역학적으로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완벽하게 안다면, 현재 상태에서 과거 상태를 역산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양자역학에서도 완전히 닫힌 계가 유니터리하게 진화하면 전체 계의 정보는 보존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엔트로피 증가는 왜 나타나는가.

핵심은 전체 미시상태의 정보와 우리가 실제로 관찰하는 거시적 정보를 구분하는 데 있다.

계가 진화하면서 정보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퍼져 들어간다.

  • 개별 입자의 위치
  • 개별 입자의 운동량
  • 분자 간 충돌의 세부 구조
  • 원자의 진동 상태
  • 전자기장
  • 주변 환경과의 미세한 상관관계
  • 계 내부의 복잡한 위상 관계

처음에는 “왼쪽이 뜨겁고 오른쪽이 차갑다”처럼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정보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입자의 운동과 상관관계 속으로 퍼진다.

정보는 없어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더 이상 몇 개의 거시적 변수로 읽어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엔트로피 증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단순하고 국소적인 정보
→ 복잡하고 비국소적인 미시적 상관관계


5. 기체 확산의 예

상자의 왼쪽 절반에만 기체가 들어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거시적 정보가 존재한다.

“기체는 왼쪽에 있다.”

이 정보는 단순하며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기체의 위치가 공간적으로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압력 차이도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를 이용해 일을 얻을 수도 있다.

중간의 칸막이를 제거하면 기체는 상자 전체로 퍼진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과 같은 상태가 된다.

“기체는 상자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한다.”

기체 분자 하나하나의 운동은 계속 물리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처음에 존재했던 “왼쪽에 몰려 있다”는 거시적 정보는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정보는 완전히 없어졌다기보다, 분자들의 위치와 운동량 사이의 미세한 상관관계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흔적을 이용해 모든 분자를 다시 왼쪽으로 모으려면 사실상 모든 분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제어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기체 확산은 비가역적으로 보인다.


6. 컵이 깨지는 과정

멀쩡한 컵은 매우 제한된 형태를 가진다.

  • 조각들이 특정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 전체 형태가 유지된다.
  • 물을 담을 수 있다.
  • 공간적으로 하나의 물체로 구분된다.

“컵이 온전하다”라는 짧은 문장은 수많은 원자와 분자가 특정한 구조적 제약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컵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 이 제약이 풀린다.

에너지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퍼진다.

  • 파편의 운동
  • 바닥의 진동
  • 공기 중의 음파
  • 마찰에 의한 열
  • 재료 내부의 변형
  • 주변 물체의 미세한 진동

처음에는 컵의 높이와 위치에 집중되어 있던 위치에너지가 수많은 자유도로 분산된다.

컵을 깨기 전 상태는 몇 개의 변수로 비교적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 컵의 위치
  • 컵의 속도
  • 컵의 형태

하지만 깨진 뒤의 전체 상태를 완전히 설명하려면 모든 파편의 위치와 속도, 발생한 열과 진동, 음파의 전파까지 알아야 한다.

즉, 정보가 더 복잡한 형태로 퍼졌다.

컵의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컵이 어질러졌다는 뜻이 아니다.

컵의 거시적 구조를 형성하던 제약과 에너지가 수많은 미시적 자유도로 분산되었다는 뜻이다.


7. 자유에너지와 추적 가능한 정보

엔트로피는 자유에너지와도 연결된다.

자유에너지는 계가 실제로 일을 수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같은 총에너지를 가진 두 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에너지가 특정한 위치나 온도 차이에 집중되어 있다면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반대로 에너지가 전체 계에 균일하게 퍼져 있다면 일을 얻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의 양뿐 아니라 에너지의 분포다.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다음과 같은 구별 가능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 높은 곳과 낮은 곳
  •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
  • 높은 압력과 낮은 압력
  • 분리된 전하
  • 농도 차이
  • 정렬된 구조

이러한 차이는 추적 가능하고 활용 가능하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이러한 차이가 점차 사라진다.

에너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일을 얻는 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분산된다.

따라서 자유에너지의 열화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집중되고 활용 가능한 에너지
→ 미시적으로 분산되어 활용하기 어려운 에너지


8. 엔트로피 증가는 관찰자의 무지인가

엔트로피를 정보의 분산으로 해석하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단순히 관찰자가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엔트로피는 관찰자의 지식과 관련되지만, 단순한 주관적 무지는 아니다.

현실의 관찰자는 유한한 측정 정밀도와 제한된 계산 능력을 가진 물리적 존재다. 모든 미시상태를 무한한 정밀도로 측정하고 제어할 수 없다.

이 한계는 단순한 심리적 무지가 아니라 물리적 조건이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온도, 압력, 밀도 같은 거시적 변수는 임의로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매우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계에서 반복적으로 안정된 규칙을 보이는 실제적인 물리량이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완전히 객관적인 실체도 아니고, 완전히 주관적인 무지도 아니다.

엔트로피는 다음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 계의 실제 미시적 구조
  • 우리가 선택한 거시적 변수
  • 측정 가능한 해상도
  • 관찰 시간의 범위
  • 추적할 수 있는 상관관계

즉, 엔트로피는 계와 관찰 방식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9. 미세 엔트로피와 거친 엔트로피

이 관점을 더 명확히 하려면 미세한 수준과 거친 수준을 구분해야 한다.

미세한 수준에서는 모든 상태를 구분한다.

각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서로 다른 상태로 본다.

거친 수준에서는 여러 미시상태를 하나의 거시상태로 묶는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미시적 차이를 모두 같은 상태로 처리한다.

  • 각 분자의 정확한 위치
  • 분자 충돌의 순서
  • 미세한 속도 차이
  • 원자 진동의 위상 차이

이러한 구분을 버리고 온도와 압력만 본다면, 우리가 보는 상태 공간은 훨씬 단순해진다.

문제는 계가 진화하면서 처음에는 거시적으로 구분 가능했던 정보가 점점 더 미시적인 차이로 변한다는 것이다.

정밀한 상태 공간에서는 정보가 보존되더라도, 거친 상태 공간에서는 정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를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다.

미세한 수준: 정보 보존 가능

거시적 수준: 추적 가능한 정보 감소

엔트로피 증가는 이 두 수준 사이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10. 상관관계 속으로 이동하는 정보

정보가 미시적 자유도로 분산된다는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개별 입자 상태로 퍼진다는 것만이 아니다.

정보는 입자들 사이의 상관관계 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부분계 A와 B가 처음에는 독립적이었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

A의 상태 + B의 상태 = 전체 상태

하지만 두 계가 상호작용하면 A와 B의 상태가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A만 보거나 B만 봐서는 전체 상태를 알 수 없다. 중요한 정보가 A와 B 사이의 관계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양자계에서는 이 현상이 얽힘으로 명확하게 나타난다.

전체 계의 정보는 보존될 수 있지만, 부분계만 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즉,

전체에는 정보가 남아 있지만
부분에서는 정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 관점에서 엔트로피 증가는 정보가 개별 대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사이의 관계 속으로 이동하는 과정일 수 있다.


11. 비가역성은 정보 회수의 불가능성이다

미시적 물리 법칙이 가역적이라면, 왜 현실의 과정은 비가역적으로 보이는가.

그 이유는 역과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지나치게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깨진 컵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다음을 알아야 한다.

  • 모든 파편의 위치와 속도
  • 공기 중으로 퍼진 음파
  • 바닥과 주변 물체로 전달된 진동
  • 마찰로 변환된 열
  • 재료 내부의 미세한 변형

그리고 이 모든 자유도를 정확히 반대로 제어해야 한다.

원칙적인 가능성과 실제적인 가능성은 다르다.

물리 법칙이 역과정을 금지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정보와 제어 능력이 현실적으로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 과정은 거시적으로 비가역적이다.

따라서 비가역성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정보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정보가 회수 불가능한 규모로 분산된 상태


12. 과거의 흔적과 엔트로피

엔트로피의 방향은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사건이 일어나면 정보는 환경으로 퍼진다.

컵이 깨지면 다음과 같은 흔적이 남는다.

  • 파편
  • 바닥의 흠집
  • 소리
  • 주변 물체의 진동
  • 사람의 기억
  • 영상 기록

이러한 흔적은 모두 과거 사건의 정보가 환경의 여러 자유도로 분산된 결과다.

우리는 그중 일부를 읽어 과거를 재구성한다.

반면 미래 사건의 흔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기록과 증거를 말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가능성과 확률을 말한다.

과거와 미래의 비대칭은 엔트로피 증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사건은 현재 환경에 흔적을 남겼지만, 미래의 사건은 아직 현재 환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13.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

우리가 과거를 이해한다고 할 때, 실제로 과거의 모든 미시상태를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재 남아 있는 일부 흔적을 바탕으로 과거를 거시적 구조로 압축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컵이 떨어져서 깨졌다.
  • 기온이 내려가 얼음이 얼었다.
  • 경제 위기로 사회적 갈등이 심해졌다.
  • 어떤 경험이 한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설명은 실제 인과망의 극히 일부만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미시적 세부를 알지 않아도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 설명 자체가 이미 거시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 전체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다.

현재 추적 가능한 흔적으로부터 안정적인 거시적 인과구조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14. 이해의 한계

거시적 설명은 강력하지만 필연적으로 정보를 버린다.

하나의 거시적 결과에는 여러 미시적 경로가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이 끓었다”라는 동일한 결과도 다음과 같은 다양한 경로를 가질 수 있다.

  • 가열 장치의 종류
  • 용기의 미세 구조
  • 기포가 발생한 위치
  • 대류의 세부 패턴
  • 외부 환경과의 열교환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차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

이 때문에 현재의 거시적 상태만으로 과거의 정확한 경로를 완전히 복원할 수 없다.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압축하지만, 바로 그 압축 때문에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다.

거시적 이해 방식 자체에 내장된 구조적 한계다.


15. 설명 가능한 닫힌계

그렇다면 정보의 분산을 실제로 추적할 수 있는 공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완전히 닫힌 우주 전체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특정 질문과 시간 규모에 대해 충분히 닫힌 계를 만들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 계의 공간적 경계
  • 관찰 가능한 변수
  • 측정 해상도
  • 시간 간격
  • 외부와 교환되는 에너지와 물질
  • 무시하는 자유도

이렇게 정의된 공간 안에서 정보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장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양자계나 정밀하게 제어된 입자계에서는 다음을 관찰할 수 있다.

  • 전체 엔트로피는 유지됨
  • 부분계 엔트로피는 증가함
  • 정보가 두 부분계 사이의 상관관계로 이동함

이러한 계는 정보 분산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실험적 공간이 된다.

완전한 닫힌계라기보다, 특정 목적에 대해 설명적으로 충분히 닫힌계다.


16. 설명적으로 닫힌 상태 공간의 조건

어떤 관찰 상태가 충분한지는 미래 예측 가능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

현재 상태를 Y_t라고 하자.

현재 상태 Y_t만으로 다음 상태 Y_(t+1)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면, 관찰 공간은 근사적으로 닫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과거의 더 많은 정보나 외부 변수를 추가했을 때 예측이 크게 좋아진다면, 현재 상태 정의에서 중요한 자유도가 빠진 것이다.

이를 개념적으로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다.

P(Y_(t+1) | Y_t, 과거 전체)
≈ P(Y_(t+1) | Y_t)

이 관계가 잘 성립할수록 현재 상태 공간은 설명적으로 닫혀 있다.

이때 엔트로피의 변화는 우리가 정의한 관찰 공간에서 정보가 얼마나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17. 딥러닝과 정보의 거시적 압축

이 관점은 딥러닝에도 연결된다.

딥러닝 모델은 입력의 모든 세부를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이미지 분류 모델을 예로 들면 입력 이미지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포함된다.

  • 물체의 형태
  • 배경
  • 조명
  • 촬영 각도
  • 색상
  • 센서 잡음
  • 미세한 픽셀 변화

하지만 분류에 필요한 정보는 그중 일부다.

신경망은 학습 과정에서 과제에 유용한 구조는 보존하고, 중요하지 않은 차이는 제거한다.

많은 서로 다른 이미지가 하나의 개념으로 압축된다.

수많은 픽셀 상태
→ 하나의 내부 표현
→ 하나의 범주

이 과정은 통계물리학의 거시화와 닮아 있다.

많은 미시적 차이를 하나의 거시적 의미로 묶는 것이다.

다만 신경망이 발견한 의미는 세계 전체의 절대적 의미가 아니다.

그 의미는 다음 요소들에 의해 제한된다.

  • 학습 데이터
  • 손실함수
  • 모델 구조
  • 최적화 방법
  • 관찰 가능한 입력

따라서 딥러닝도 거시적 이해의 강력함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18. 엔트로피는 무질서가 아니라 접근 가능성의 문제다

이제 엔트로피를 다음과 같이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는 정보가 비교적 적은 수의 거시적 변수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는 정보가 수많은 미시적 자유도와 상관관계에 분산되어 있는 상태다.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는 다음이 가능하다.

  • 상태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 미래를 비교적 잘 예측할 수 있다.
  • 에너지 차이를 이용해 일을 얻을 수 있다.
  • 구조와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높은 엔트로피 상태에서는 다음이 어려워진다.

  • 초기 상태를 복원하기
  • 특정 경로를 역추적하기
  • 분산된 에너지로 일을 얻기
  • 미시적 정보를 거시적 변수로 회수하기

따라서 엔트로피 증가는 세계가 단순히 더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보의 존재 방식이 변하는 것이다.


19. 핵심 명제

이 문서의 중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엔트로피 증가는 정보의 소멸이 아니라 정보의 형태 변화다.

초기에는 정보가 다음과 같은 거시적 차이로 존재한다.

  • 온도 차이
  • 압력 차이
  • 농도 차이
  • 위치 차이
  • 구조적 질서
  • 공간적 분리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정보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이동한다.

  • 개별 입자의 미세한 운동
  • 계 내부의 복잡한 상관관계
  • 환경으로 퍼진 열과 진동
  • 부분계 사이의 얽힘
  • 현실적으로 추적할 수 없는 미시적 차이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거시적으로 집중된 정보
→ 미시적 자유도로 분산된 정보
→ 실질적으로 회수 불가능한 정보

이것이 거시적 엔트로피 증가의 핵심이다.


20. 결론

엔트로피는 단순히 무질서의 정도가 아니다.

보다 깊게 보면 엔트로피는 우리가 추적하고 활용할 수 있었던 정보가 수많은 미시적 자유도와 상관관계 속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지만, 일을 할 수 있는 형태에서 열로 분산된다.

정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지만, 단순한 거시적 변수로는 회수할 수 없는 형태로 이동한다.

구조는 갑자기 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유지하던 제약과 상관관계가 더 넓은 자유도로 흩어진다.

따라서 엔트로피 증가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엔트로피 증가는
우리가 몇 개의 거시적 변수로 다룰 수 있던 정보가
추적할 수 없는 수많은 미시적 자유도로 분산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비가역성이란 그 정보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현실적으로 회수 불가능한 규모로 퍼졌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 관점은 엔트로피를 무질서의 언어에서 정보의 이동과 접근 가능성의 언어로 바꾼다.

세계가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을 수 있던 차이가
더 깊고 더 복잡한 미시적 구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